새신자교육

2강.신(하나님)은 존재하는가? [역사적 증거]|

하나님은 특별한 계시를 주셔서 하나님을 확실히 알도록 해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 약 2000년 전에 로마 군병들에 의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신 이 사건은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됩니다. 이 사건은 가장 확실하고 증명 가능한 객관적인 증거입니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예수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부활)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사도행전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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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후반에 영국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이며 변호사인 프랭크 모리슨이 부활의 허구를 증명하려고 3년여에 걸쳐 모든 자료를 모으며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 성경의 모순을 파헤치려 했습니다. 그러나 후에 그는 「Who moved the stone? 누가 돌을 옮겼는가? 」(생명의 말씀사) 라는 책을 저술해 오히려 부활의 사실을 확증했습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예수님 일생의 마지막 7일을 철저하게 연구한 결과, 부활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확실한 역사적 사건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프랭크 모리슨이 대표적인 부활의 증거로 몇 가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1.철저히 안식일을 지키던 유대인들이 안식일 대신 일요일을 주일로 지킨점입니다. 그 전까지 유대인들은 율법에 따라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안식일로 정해 철저히 지켰습니다. 심지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지금도 정통 유대인들은 이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 배경에서 그 당시 일부 유대인들이 일요일을 주의 날로 정해 안식일로 지킨 것은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안식 후 첫날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모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안식일을 지키던 유대인들이 AD32년경부터 주일을 지키게 된 점이 부활의 첫째 증거입니다.

 

 

“안식일 다음 날(주일), 우리는 주의 만찬을 나누려고 한자리에 모였다. 바울로는 그 이튿날 떠나기로 되어 모인 사람들과 밤이 깊도록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도행전 20:7, 공동번역)

 

 

그 후 A.D 321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태양의 날이었던 일요일을 그리스도의 날인 주일로 정하면서 주일에는 쉬는 날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주일로 정하게 된 배경에는 휴일이 되기 전부터 그리스도인들이 그날(일요일)을 주의 날로 정하여 모임을 가진 것에 유례하고 있습니다.

 

2.교회가 발생했다는 사실입니다.

 

211F4C5056C6BE6316BF2D당시 소아시아(터키) 지방과 예루살렘, 로마, 에베소, 안디옥, 고린도, 빌립보 등의 큰 도시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하나님이 아들을 통해 구원을 주셨다는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인 교회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예수가 부활한 후 사람들이 모여 교회라는 공동체가 형성된 것입니다. 이것 또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신으로 믿고 그 박해 속에서 교회를 세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도 성경에서 언급된 교회들이 비록 뼈대만 남았지만 확실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이집트, 터키, 그리스, 로마에 이르기까지 초창기 교회들의 모습이 일부분이지만 존재하고 있으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의 역사를 보기 위하여 성지순례를 다녀오고 있습니다.

 

 

3.신약 성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기록입니다.

그 시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도한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던 때였습니다. 성경에는 예수가 부활한 후 만난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거론되어 있고 실제 그의 죽음과 부활을 직접 목격한 제자들이 신약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만일 이 말이 거짓이라면 왜 제자들이 순교했겠습니까? 거짓을 위해 목숨을 버릴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버린 제자들이 무엇 때문에 다시 제자가 되어 선교했겠습니까? 거짓을 위해 그 힘든 선교를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예수 제자들의 대부분은 선교하다가 우상을 숭배하던 이방인들에 의해 순교하고 말았습니다.

 

 

4.로마 황제들의 핍박 속에서도 기독교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네로 황제가 기독교를 박해할 때 많은 사람들이 이 신앙 때문에 죽었는데 그들 대부분이 유대인이었습니다.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은 안식일 대신 주의 날을 기억하고 주일을 지켰고, 자기 동네 유대 땅에서 살았던 한 인물 예수를 메시아라고 고백하고 죽어갔습니다. 그런 기독교인들이 온갖 핍박 속에서도 신앙을 위해 목숨을 내걸었고 마침내 로마는 기독교 국가가 되었습니다. 

 

 

5.예수님의 무덤이 비었습니다.

1)반론으로 제자들이 훔쳤다는 가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평소 “앞으로 내가 죽을 것인데 죽은 후 3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라고 공공연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나 로마 집정자들은 군병들을 세우고 무덤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시체가 없어졌습니다. 몹시 난처해진 그들은 거짓 증인을 세워 군병들이 조는 사이에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갔다는 말을 퍼트리게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을 때 도망 간 사람들인데 무슨 용기로 군인이 지키는 무덤에 와서 시체를 훔쳤을까요? 그리고 시체를 훔치고 나서도 예수님이 부활하시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 순교할 수 있겠습니까? 

 

 

2)종교지도자들이 시체를 훔쳤다는 가설이 있습니다.

사실 종교지도자들이 시체를 숨길 필요가 있습니까? 부활이 두려워 군병들에게 무덤까지 지키게 한 사람들인데 무슨 이유 때문에 그렇게 했겠습니까? 혹시 제자들이 훔쳐 갈까 봐 감추었다면 그 이후에 제자들이 부활을 외칠 때 시체를 내보이며 기독교의 불씨를 단번에 잠재울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부활의 소식이 예루살렘 한복판에서 들리기 시작하면서 많은 유대인들이 개종하고 교회가 생기고 주일이 생긴 당시 정황을 살펴볼 때 이 이론 또한 타당하지 않습니다.

 

 

3)무덤을 잘못 찾아갔다는 가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여자들이 슬픈 나머지 정신이 없어 다른 빈 무덤을 잘못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뒤에 찾아온 베드로와 요한까지 실수했다고 보기 어렵고 공동묘지가 아닌 개인 소유의 무덤이라 혼동 할 수도 없었고 혼동했더라면 다시 찾아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4)졸도설이 있습니다.

18세기 나온 이론으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죽지 않고 졸도했다가 서늘한 동굴 무덤에서 3일 만에 깨어났다는 주장입니다. 상식적으로 예수님이 갖은 고초를 겪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며 상처를 입은 후 3일 동안 먹지도 못하다가 어떻게 무덤의 큰 돌을 밀어내고 무장한 군병을 물리치고 나올 수 있을까요? 만일 졸도했다가 의식을 찾았다면 그 후 활동하다가 언젠가는 다시 죽었을 텐데 제자들이 어떻게 부활의 교리를 선포하며 순교까지 할 수 있었을까요?

 

이처럼 많은 가설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거짓 주장으로 만들어 버리려고 했습니다. 또한 기독교를 적대하는 무리들이 마치 예수님의 제자나 그 밑에 제자들이 쓴 것처럼 문서를 만들어 퍼트렸습니다. 그러나 세계 기독교 역사는 예수님의 부활의 사실 위에 세워졌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6.부활 후에 사람들 앞에 나타나신 예수님

예수님은 부활 후 각기 다른 시간과 장소에,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 등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셔서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하셨습니다. 제자들도 처음에는 부활을 의심했는데, 그 중 도마는 계속 의심하다가 나중에 예수님을 직접 만나 그 손의 못 자국을 보고서야 부활을 믿었습니다. 한 두 사람이 거짓말로 예수님의 부활을 퍼트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의 제자들 전부가 부활의 소식을 전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직접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 대부분이 부활을 전하다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가장 의심많았던 도마는 인도에서 순교했습니다.

 

또한 제자들 외에 당시 500여명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일시에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편지를 쓰던 시기(AD50-60년경)에도 그 500여 명 중에 반 이상이 살아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온 세계에 나가서 부활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바울이 온갖 고난과 핍박 속에서 죽음을 무릎 쓰며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 모든 것은 부활이 너무나 분명한 역사적 사건이며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바울을 실은 배는 바로 유럽의 역사를 싣고 갔다.”고 표현했습니다. 또한, 영국의 사학자 토마스 아놀드 씨는 오랜 기간 역사를 연구하다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건보다 완전하게 증명될 수 있는 사건은 인류 역사 가운데는 없다.” 고 말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로마군에 대항하는 갈릴리의 지휘관이기도 했던,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 A.D 37~100)가 기록한 「유대 고대사」 18권에서는 “예수님이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증언하는 무리가 아직도 살아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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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무심코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주제들 (홍광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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