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균형잡기

6.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복

6.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복

[마음이 청결한 자가 얻는 복]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 5:8)

주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마음은 단순한 감각기관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창구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받는 복이 하나님을 볼 정도라고 하니, 그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세계에 들어가겠습니까?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누리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되려고 힘쓰시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였던 에녹이나 노아와 같은 사람들은 전부 마음이 청결하였고 당대에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는 칭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창 6:9) 그들은 마음이 청결하기에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하나님의 은총을 그 누구보다도 많이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보았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며, 하나님의 은사를 받았으며 하나님 나라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누리기 위하여 어떤 방법론이나 프로그램을 쫓기보다 마음이 청결해 지도록 거룩함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결국 거룩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곧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에 합한 그에게 자신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또한 마음은 단순한 감각기관이 아니라, 신령한 일들을 접하는 기관입니다. 예수님은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마음을 열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눅24:45)

사도 바울은 빌립보 강가에서 복음을 전할 때, 성령님은 루디아라는 한 여자의 마음을 열어 복음을 듣게 해 주었습니다.(행 16:14) 그러므로 사탄은 마음이 깨끗하지 못하도록 혼미케 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후4:4)

또한 마음은 신령한 일들을 분별하는 기관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 분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즉 그 마음이 얼마나 청결하냐에 따라서 영적인 분별력도 깊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 2:13)

사탄이 놓은 죄의 덫을 누가 잘 분별할 수 있습니까?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사탄은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우리에게 접근해 오는데 뻔한 덫은 놓치 않습니다. 아주 교활하고 빈틈이 없기 때문에 좀처럼 그 덫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물과 같이 청결한 사람은 쉽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는 세상과 타협하거나 적당히 혼합된 마음이 아니라 청결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천사가 와서 말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의 말도 잘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마음은 그 말이 영적 속임수인지 알 수 있는 청결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다면 개인에게 일어난 일들이 성령의 역사인지 사탄의 역사인지 구별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인지 사탄의 음성인지 구분하지 못한다면 그의 삶은 혼란스럽고 위태로울 것입니다. 특별히 위급한 상황에서 구분하지 못한다면 더 위태로울 것입니다.

만약 교회가 어떤 예언에 대하여 참인지 거짓인지 구별하지 못하면, 그 교회는 혼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은 단순한 감각기관이 아니라 신령한 일을 분별하는 신령한 기관으로써 영혼의 방향키와도 같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대부분의 교회들이 이 분별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지 못하고, 자신은 신앙생활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다가 멸망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마음이 청결한 사람에게 오는 축복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만이 청결한 자가 될 수 있을까요?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요 15:3)

주님은 주님의 말씀으로 마음이 깨끗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마음을 깨끗케 하는 순수한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그 말씀을 들었을 때에 찔림을 받고 회개함으로 마음이 깨끗해졌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청결함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소리내어 읽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은 살아서 운동력이 있는 날선 검과 같다고 하십니다.(히 4:12) 성령님께서 그 말씀의 검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수술하십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무디는 처음 예수님을 믿고 중생했을 때 무척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중생한 기쁨을 잃고 세상을 따라 나갔습니다. 그는 ‘안 되겠다’ 생각하고 일주일간 산에 올라가서 금식하며 기도해 은혜를 충만히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은혜는 얼마 못 가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는 다시 옛날로 돌아가자 그만 낙심해 “하나님, 나는 버림받은 사람입니다” 라며 탄식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10:17) 라는 말씀을 보게 됐습니다. 그 순간 그는 마음이 뜨거워져서 무릎을 쳤습니다. ‘그렇다! 나는 성경을 안 읽어서 신앙이 자라지 못하고 정결하지 못 했구나’ 그때부터 그는 성경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생활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죄와 세상이 떠나가고 그 마음이 점점 성결해지고 성령으로 충만케 된 것입니다. 기도할 수록 기도가 은혜가 되고 설교가 은혜가 되었습니다.

 

무디는 한번 은혜 받고 그 힘으로 오랜 기간 버티려고 하는 이들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그럴 것이면 차라리 평생 먹을 음식을 한꺼번에 먹어두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읽기는 지속적으로 수행되어야 합니다. 항상 말씀을 가까이 하는 습관을 길들여 각성이 항상 일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매일 말씀으로 각성하지 않으면, 세상을 따라가고 세상을 사랑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또한 말씀이 곧 주님이시기 때문에 말씀으로 충만한 것은 주님으로 충만한 것이며 성령으로 충만한 것입니다. 주님으로 충만하기에 그의 기도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는 말씀이 실제로 역사하는 산믿음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청결이란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사랑하려는 두 마음에서 벗어난 상태로 온전히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신뢰하는 마음입니다. 청결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매일 하나님을 깊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계시를 받게 되고 알게 될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친구가 될 것이며 주님 다시 오실 때 거룩한 신부로써 들림 받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내면을 아름답게 하는 것보다 위대한 일, 시급한 일은 없습니다.

성령님은 오늘도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청결하게 하시는 일에 분주하십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현대 교인은 마음을 청결하게 하는 회개의 복음을 듣는 것조차 쉽지 않은 실정입니다. 또한 회개 복음을 전하는 귀한 목회자들을 율법주의자로 정죄하며 매도하는 현실입니다. 성도들은 회개 복음을 복음에서 벗어난 것으로 오해하거나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으로만 치부해 버립니다. 은사주의자들은 마음을 청결하게 하는 것이 신령한 은사를 깨끗하고 깊게 접하는 통로임을 알지 못하고 능력만을 받으려 합니다.

안수를 받고 예언을 받으려고 힘쓰지만 결국 모든 신령한 은사는 깨끗한 마음가운데 부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곧 그가 성령님의 통제에 잘 순응하는 마음의 상태가 될 때 부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기름부어 세운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할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겸손하고(출 4:13) 청결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들이었습니다.(창 6:9)

그러므로 능력을 쫓기보다 하나님이 통치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가지려고 몸부림쳐야 합니다. 주님 자체가 말씀이신데 어찌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성도와 올바른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 자체가 거룩하신 하나님이신데 세상에 살면서 저절로 더러움이 묻어 날 수밖에 없는데도 회개 복음을 듣기 싫어한다면 어찌 마음이 청결해 질 수 있겠습니까? 어찌 그가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사도 요한은 율법을 지키는 자가 주님을 진실로 아는 자라고 했으며,(요일 2:3) 주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은 자신의 계명을 지킨다고 하셨습니다.(요 14:15) 사도 바울은 이 계명을 지키기 위해 늘 자신의 자아를 죽인다고 고백했으며,(고전 15:31) 히브리서 기자는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고 했습니다.(히 12:1-3)

말씀은 곧 주님이시며, 말씀을 대하는 태도는 곧 최고의 권위자이신 주님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겸손함으로 대하게 될 때 그에게 성령님은 더러움을 제거하시고 완전한 청결로 이끄실 것입니다. 그 청결함의 목적은 주님과 친밀한 교제에 들어가는 것이기에 성령님은 오늘도 진리를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십니다.(요 14:26)

 

d55d70d9e61d7025fdbb7fe89de34b5e_1494445134_826.jpg
출처/균형잡힌 영성을 회복하라(홍광선)

"예수님의 신부의 세대를 세우는 교회'

스패나웨이 어노인팅교회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Comments

 
 
시편 3:6,7 믿음을 지키려는 싸움
사명과 헌신의 크기만큼 사단의 도전도 크다. 완전히 헌신하고 영성의 습관을 가지라
율법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십시요!
스미스 위글스워스/세상에는 참 기쁨이 없습니다
  • 글이 없습니다.
  • 글이 없습니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