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5/7 "이런 교회가 되게 하소서" 홍광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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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교회가 되게 하소서!(교회론)

암송 /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딤전 3:15-16).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도답게 살기 위해서는 한가지 물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즉 구원받은 성도가 살아가야 할 목적이 무엇인가? 이 목적을 아는데서 바른 신앙생활이 시작합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에 합하게 살아가려 하려면 교회론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진리와 기둥의 터이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가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전하지 못하면, 또는 하나님의 목적이 명확하지 않다면 어떻게 교회가 진리가운데 온전하게 설 수 있겠습니까? 그 교인들은 어떻게 세상에서 변화된 성도의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목적을 알지 못하면 / 혼란, 어둠에 헤맴]

목적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하는 성경공부, 신학적 지식은 삶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고 무익하기만 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교회를 이루는데 방해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서로 목적이 다르고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교회 다니면서도 혼란이 일고 초점이 맞지 않아 답답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서는 우리는 묻습니다. 나는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 것인가? 왜 이렇게 신앙생활을 안일하게 하는 것일까? 성경과 삶이 왜 괴리감이 있는 것일까?

이게 정말 교회일까? 그 문제로 인해 교회를 정착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목적이 분명하지 않으면, 신학의 깊이가 깊다고 할지라도 초점을 잡지 못하게 됩니다. 마치 방향을 잡지 못하는 배가 어둠을 헤매는 것과 같이 우리는 사단의 함정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악이란 속임에 뿌리를 두기 때문입니다. 예)하나님을 대면하며 대화했던 아담과 하와도 선악과를 따먹어서는 안된다는 확실한 하나님의 뜻을 알았지만 결국 속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목적이 명확하지 않으면 속임을 당할 수 있습니다. 예)지금 이시대는 악이 넘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을 악이라 부르고 악을 선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동성애가 선이 되고 성경이 악이 되었습니다. 진리를 선포하면 차별한다고 말하고 거짓을 찬양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예)신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본주의에 빠져 나를 위한 목적이 곧 하나님을 위한 목적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잘못된 목적을 진정한 목적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잘못된 신학들이 성도의 번영과 축복을 위한 목적을 곧 하나님을 위한 목적인 마냥 그럴싸하게 포장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히3:10)

[목적을 대충 알게 되면 / 목적을 이룰 수 없음, 외식적인 삶, 구원과 거리가 멂]

또한 목적을 알았다고 할지라도 대충 알게 되면 그 목적을 삶으로 이루어 나갈 수 없습니다. 예)마치 열처녀 중에 미련한 다섯처녀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목적으로 살았지만 어느 순간 게으름에 빠졌습니다. 성경에서는 천국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으니”(마25: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으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13)

 

 

우리는 그 목적을 정확히 알아야 하며 삶에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적당히 흉내내거나 지식으로 아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종교적인 신앙인, 바리새인과 같은 외식적인 신앙인이 되어 구원과는 거리가 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론을 뚜렷하게 깨달아야 하며, 깊이 있게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막연히 알아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어가 “교회는 예수님의 신부다” 라고 할 때, 왜 그런지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삶이 변화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오실 재림의 주, 우리의 신랑으로 명확히 알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신랑되신 그분은 만유의 주이십니다. 그분은 만왕의 왕이시며, 신부될 성도들을 위해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분은 늘 우리의 마음의 문을 노크하면서 신랑되신 주와 친밀하면서도 거룩한 관계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은 종교하고는 엄연히 거리가 먼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에 이를 수 있도록 명확하게 가르치고 적용하는 곳이 진리와 기둥의 터인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교회다운 교회를 이루게 되고 삶과 분리할 수 없는 하나됨을 이룹니다. 성도들은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함께 신앙생활을 함으로 서로를 권면하며 세워주며 중보기도 하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교회는 진리와 기둥의 터로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성도들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며, 성도들은 진실된 교제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앙생활의 목적으로 삼아야 하는 교회론은 무엇일까요?

교회는 하나님의 어떤 진리로 세워져야 할까요?

1.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부름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교회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앙공동체이며,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 주시고 세우신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령께서 다스리시는 피조물이다. 대단히 중요한 목적들입니다. 그럼 왜 신앙공동체를 세우시고 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시고 왜 성령께서 역사하십니까? 그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교회시대의 결말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이 땅에 교회는 사라지고 천상의 교회, 천국이 세워질 것입니다. 그 때 그 천국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하여 세마포 옷을 준비한 정결한 신부인 것입니다.

계 19: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예)마22: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라고 예수님이 천국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청하라고 하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기 밭으로, 자기 사업하러 바뻤습니다. 이에 네거릴 길에 가서 만나는 대로 청해 데려왓지만 손님들을 보니 예복을 입지 않고 온 것입니다. 예복을 입지 않은 자는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말합니다.

천국은 혼인잔치를 하는 곳이며, 성도들은 그 혼인잔치에 참여하기 위해 예복을 준비하면서 깨어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예복을 준비할 수 있도록 진리와 기둥의 터위에 있어야 합니다. 즉 거룩한 교회, 진리가 살아 숨쉬어 회개가 선포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정의하게 되면 교회는 먼저 거룩하고 정결한 삶을 추구해 나갈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함을 추구해 나갈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다운 모습을 이루어 나갈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깨닫지 못하거나 목적이 분명하지 않다면, 그는 아마도 미련한 다섯처녀가 되거나, 첫사랑을 잃어버린 에베소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우린 예수님께서 자신과 성도와의 관계를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해 아주 명확하게 알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이 말씀에 핵심은 무엇입니까?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를 위한 좋은 계획과 표어가 있다할지라도 에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교, 거룩함, 구제, 믿음, 은사도 좋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예수님입니다. 그 무엇보다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있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선순위의 중요성을 확실히 알려 주시기 위해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해 쉽게 설명하셨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죽는 것입니다. 즉 성도가 예수님께 꼭 붙어있지 않으면, 죽는 것입니다. 아무 열매도 못 맺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함으로 늘 예수님 안에 있으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과 친밀한 신부로 초대하여 많은 열매를 맺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것을 대충알고 있다면 문제가 생깁니다. 분명 주님의 친밀함 안에 거하지 않는자는 밖에 버려져 마른다고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잃어버릴 가능성까지 있을 정도로 큰 문제인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분명 알고 깨우치는 사람은 변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분명한 목적을 알고 서로 권면해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여기 오신 분들이 그러한 열망을 가지고 오셨다고 믿습니다.

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즉 주님 안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순서가 어떻게 됩니까? 먼저 주님 안에 거할 때 그 다음에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과실을 많이 맺습니다. 4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분명히 주님 안에 먼저 거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는 이 순서가 바뀝니다.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2:3,4)

- 내가 먼저 주님 안에 거하려고 노력하지는 않고 열매부터 맺으려고 합니다.

- 내가 먼저 주님 안에 거하려고 노력하지는 않고 주님이 내 안에 오시라고 합니다.

- 가지가 열매를 많이 맺으려면 먼저 가지가 가지치기도 하고, 영양분도 힘껏 흡수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은 않고 열매만 맺길 바랍니다.

예)주님 안에 있지는 않으면서, 이것 저것 많은 열매를 주시라고 기도합니다.

주님도 주시고 싶지요! 그러나 주님과 하나되지 않았기에 주는것이 어렵습니다.

그것받고 교만할까봐~ 그것 때문에 타락할까봐~ 그것 보다 세상을 더 사랑할까봐~

아직 받기에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 그런데 이 순서를 알지 못하고 평생 열매만 달라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 주님도 굉장히 답답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여 하나님 나라가 내 안에 온전히 세워질때

그때부터 주님이 많은 열매로 역사하는 것인데,,,,,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안에 거하는 법 (신부의 모습)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22:36-38)

간단합니다. 주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인 것입니다. 마치 다윗처럼 주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말합니다. 주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란? 한 마디로 정의하면 주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예)여러분 마음에도 누군가 늘 생각나는 사람이 지금 있을 것이거나 예전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바로 여러분 마음 안에 거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여러분을 진실로 사랑해줬던 사람일 것입니다. 바로 연인일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 사랑에 빠졌기에 남자친구는 여자친구의 마음안에 여자친구는 남자친구의 마음안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됨입니다. 하나가 되어야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커플이 문제가 생깁니까?

진실로 사랑하지 않는데 열매부터 맺으려고 하는 커플입니다. 많은 이유가 있지만 어떤 이는 성적인 쾌락의 열매를 먹기 위해서, 어떤 이는 상대방의 재산과 가문의 배경을 얻기 위해서 정략적인 결혼을 합니다. 사랑안에 하나됨이 없는 결혼은 파탄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결혼이 가능한 이유는 그 사랑이 진실된 사랑이라고 착각하거나 서로 진실된 사랑을 원치 않기 때문이거 사랑하는 척 속이는 것일 것입니다.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완전한 사랑을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의 관계는 어떨까요?

그분은 착각하거나 속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완전히 거룩하시고 사랑으로 충만한 분이십니다. 예)부자청년이 찾아와 자신은 어려서부터 십계명을 다 행했다고 했지만 예수님은 그 청년이 물질을 너무나 사랑함을 보고 계셨습니다. 버리고 자신을 따를 것을 명했지만 그는 예수님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쉽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쉽사리 여러분의 신앙에 만족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자만하지 않기 바랍니다. 세상이 그렇게 쉽게 우리를 예수님의 신부가 되도록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음행하는 교회들 다원주의, 번영신학, 종교통합운동, 세속주의, 인본주의 등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과 진실된 사랑에 빠진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이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히 이세대 교회의 모습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 로마 교회 성도들아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된 그 사랑을 식게 하지 말고, 일로 여기지 말고, 전생에 걸쳐서 계속 자라나고 결국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마음을 늘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 즉 끊임없이 개혁해 나가라! 이 세대를 쫓지 않고, 오직 주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라!

시편 51편은 마치 이 시대의 교회가 영적인 간음을 행한 후에 어떻게 예수님과 하나되는 관계를 맺어가야 할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편 51편은 주님의 신부였던 다윗이 밧세바를 취한 후 즉 세상과 간음을 한 후에 다시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그가 지었던 시입니다. 이 기도는 바른기도, 참된기도입니다.

1.모든 죄에 대한 진실된 회개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주소서”(9) 죄를 지은 자는 주님이 고개를 돌린다. 싫어하신다. 모든 죄에 대하여 회개해야지 자신이 좋아하는 죄는 남겨두면 그건 주님을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첫째는 자신의 죄를 알고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적용)성경 특별히 산상수훈(마5-7장)을 중심으로 열심히 읽으십시오, 매일 읽으십시오, 양심이 살아나게 되어 회개가 나올 것입니다.

2.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는 기도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10,11)

내 스스로 새로운 마음, 새로운 심령을 가질 수 없으니, 주여 창조하여 주옵소서, 에스겔36장에는 성령이 오셔서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36:26-27) 적용)성령님께 새마음을 주시라고 무시로 매일 기도하십시오,

3.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키는 기도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12)

우리 마음은 즐거움을 쫓아간다. 구원의 즐거움, 예수님을 아는 즐거움, 에수님의 사랑에 사로잡힌 즐거움이 필요하다. 2번까지만 하면 종교적인 신앙인이라 할 수 있다. 3번의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영성의 핵심은 예수님은 얼마나 중요한 분이심을 깨닫고 그분의 사랑에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바로 그리스도의 신부로써 이 계시에 사로잡힌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 자체보다는 그분의 능력, 그분의 축복, 그분의 치유, 그분의 성령세례 등에 신봉자가 되기 쉽습니다. 또한 최근에 많이 생겨난 수많은 프로그램들과 세미나는 오히려 예수님께 집중하게 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적용)성령님께 예수 믿는 즐거움을 알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하십시오.

4.자원하는 심령을 회복하는 기도

적용)성령님께 자원하는 심령을 주시라고 기도하십시오

성도는 이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탁월한 사역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 교회는 이 엄청난 천국복음의 진리와 기둥의 터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대충알거나, 적당히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미련한 다섯처녀, 부자청년과 같이 알고도 넘어지는 불쌍한 신세가 되고 말 것입니다. 위대한 사도들이 세운 많은 교회들이 세상과 이단에 넘어지고 만 역사들이 산증거입니다.

이제 여러분 순서를 바꾸십시오, 내가 주님안에 있어서 주님의 마음에 드는 그 한사람이 되기 위해 전진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주님의 사랑에 빠진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거짓된 사랑이 아닌 진실된 사랑을 위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현대교회는 거룩한 신부로 위대한 부름을 받았는데 영적간음의 한복판에 살아왔습니다. 마치 주님의 신부였던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를 범한 것처럼, 우리는 영적간음을 행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내 자존심을 더 살아하고 자식을 더 사랑하고, 드라마와 친구들을 더 사랑하고, 음란과 쾌락을 더 사랑했습니다.

주님이 백보좌 심판 대 앞에서 알곡과 가라지를 정확하게 갈라낼 것입니다. 그때 슬피울며 이를 갊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회개의 복음, 성결의 복음, 신부의 복음을 열심히 선포할 것입니다. 진리위에 설 수 있도록 외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신부공동체로서 서로를 신부로 세워주기 위하여 교제하십시오, 서로에게 격려가 되고 용기가 되고 자극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시간 우리는 모든 죄에 대한 회개가 필요합니다. 이일은 평생에 걸쳐서 해야 할 일들입니다. 성령님 회개하고도 매일 넘어지는 나에게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으로 새롭게 하옵소서, 첫사랑의 감격, 구원의 감격을 잃어버린 저에게 그 감격을 새롭게 하옵소서! 나는 주님의 신부가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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